* 아르헨티나 */나의 이야기

찌질한 남자의 서울 지하철 이야기..

bernabe 2010. 5. 6. 08:16

 

 

 

서울에 온지 어느새 한달이 넘었습니다.
모든것이 익숙해 가는데 이젠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네요..

 

지난 월요일...

오전에 노원구 중계동에서 약속이 있어
아침일찍 서둘러 전철을 탔습니다.

부평시장 역에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인천 지하철을 한번 갈아탄후
1호선으로 한시간 20분 정도 가서
다시 4호선으로 환승해야 합니다.

 

 

 

 

 

 

 

 

 

 

 

 

 

 

 

 

토요일날 오래 묵은 친구들과 일부 카페 회원님들과 함께
등산을 하였더니 다리가 무척 뻐근했습니다.

빈자리가 나면 얼른 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8시가 좀 넘은 막바지 출근시간이라 전철은 만원이었지요.

 

부평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후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어느 아가씨가 열심히 뜨게질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멀리 가는 모양입니다.

 

왼쪽에도 어느 아가씨가
뒤적뒤적 핸드백 속에서 책을 꺼내들더군요..
그 아가씨도 아마 멀리 갈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오른쪽에 앉아 있던 어떤 아저씨가
보시던 신문을 갑자기 빠른 속도로 접더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어느 역인가를 확인하더군요..

 

옳다구나...
이 아저씨가 금방 내리실 분이구나..

눈치 빠르게 그런 중요한 사실을 파악했으니
이제 몸을 조금씩 움직여 빈틈이 생길때 마다 저 아저씨 앞에 가서 서야지..^^

 

어느새 전철은 온수역과 구로역 신도림역등 환승역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습니다.
9시가 넘을 무렵 사람들이 대충 빠져나가고 열차 안은 헐렁해 졌습니다.

뜨개질 하며 멀리 갈 것 같이 보이던 아가씨는 첫번째 환승역인 온수에서 내리고
그 옆에 책을 꺼내들던 아가씨는 좀전 신도림역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젤 먼저 내릴것 같던 이 아저씨...
계속해서 차량이 역에만 서면 두리번 거리며 역을 확인합니다.

아니 방송도 나오는데 왜 저래?
왜 내리지도 않으면서 곧 내릴것 처럼 궁둥이까지 들었다 놨다하면서
신문까지 접구 난리야?...

다른 사람 옆으로 가서 설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혼자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옆으로 옮겼다가 아저씨가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버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너무 억울 할 것 같아서 입니다..


 

 

 

그리고 이제 용산역을 지나면서 지하철 안은 텅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이 넓은 차량안에 서있는 사람은 대여섯명도 안남았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나만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습니다.
몇발자국 옆에 자리가 또 났습니다.
슬슬 걸어가서 앉아 볼까 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잽싸게 먼저 앉더군요..

그런데 내 앞에 아저씨는 아직도 공짜신문 접은거 들고서는
두리번 거리기만 합니다..
여전히 곧 내릴 사람처럼...(아이구 미치겠다 정말로..)

결국 동대문역에서 내리더군요..
이젠 그 아저씨가 앉았던 자리 말고도
빈자리가 여기저기 많이 생겼습니다.

정말 운 없는 한주간의 시작이었습니다.

 

 

자리가 많이 생기니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아주느린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지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피곤한 몸을 잠시 자리에 의지한채 눈을 감았습니다.
잠이 살며시 밀려왔지만
어느날 처럼 목적지를 지나칠까 두려워 억지로 눈을 떴습니다.

 

그 순간 어느 할머니가 제앞에 서 계시더군요.
전 얼른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해 드렸지요.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속에 노약자 보호석쪽을 바라 보았습니다.

 

3명이 앉게 되어 있는 노약자 보호석에 의자가 통째로 없어지고
대신 장애인용 휠체어가 안전하게 머물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더군요.


맞은 편 노약자 보호석을 보았습니다.
왠 노숙자인듯 더러운 옷에 머리는 산발을 한
중 늙은이가 냄새를 풍기면서 혼자 편안히 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자리가 비었는데도 아무도 같이 앉지 않고
코를 막고는 제가 앉아 있던 자리 근처로
방금전 청량리에서 탄 서너명의 노인분들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무한정 자고 있던 사람들이
저처럼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고 있더군요..
그래도 금새 빈자리가 생겨서 대부분이 그곳으로 가서 앉을 수 있었습니다.
동작 느린 저만 또 그냥 서 있고 말입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움직이는 차량안에서
비틀거리며 자리를 찾아 가는 것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차량안을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승객중에는 노인분들이 많더군요

특히 제가 탄 차량은
노약자 보호석이 6개가 부족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제가 억울하게 서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노숙자가 갑자기 미웠졌습니다.

얼른 두리번 거리며 전철내에 불편사항 신고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1488-xxxx로 전화했지요..
혹시 노숙자가 자다가 듣기라도 할까봐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ㅋㅋ

 

지금 18xx 차량에 냄새나는 불결하신분이
노약자 보호석에 자릴 틀고 주무시는 바람에
여러사람이 불편하니 빨리 조치해 달라고..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누군가 타더니
노숙자 아저씨를 대충확인하고는 끌로 내리더군요..

그래도 냄새는 오래동안 그 근처에 머물며 사람들을 쫓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가 서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더군요.

왜 하필 이런 차량을 타서 이 먼길을 서서 왔을 까 생각하니
뭔가에 화 풀이를 한번 더해야 제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비어있다 시피했다는 노약자 보호석이 왜 요즘 만원인가?

 

혹시 좌석수를 너무 적게 배치한 것이 아닐까?

 

만일 일반인과 노인인구에 대한 비율과

너무 차이가 나게 좌석을 배치 했다면
지하철 공사에 전화해서 한바탕 항의라도 해야지...

 

우선 차량안을 살펴 보았습니다.


일반인들은 긴 의자에 7명이 앉을 수 있더군요.
한 차량안에 7명씩 앉는 자리는 3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모두 6개..

7x6 = 42명...

 

노약자 보호석은 3 명씩 4개... 12명...

일반인 42명대 노약자 12명...

비율로 보면 일반인과 노약자가 7:2

활동량등 여러가지를 감안해서 보더라도
일단 쉽게 흠잡기 어려운 좌석 비율 ...


솔직히 노인인구 증가로 좀 부족한 듯 해 보이지만
정확한 자료의 수집불가로 우선 통과.

 

만일 위 비율이 정말 딱 맞는 환상의 비율이었다고 가정을 해도
오늘 나에게 닥친 불상사(?)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애인용 휠체어 자리 때문에
보호석 3개를 치워버린 차량이 있으니
오늘 내가 탄 차량이 바로 그런 차량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노인분들이 앉을 자리가 3개 부족했고
이어서 노숙자 그인간 덕분에 다시 3개가 더 부족해 졌으니
제가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갑자기 휠체어 보호대 배치 차량에 대한 홍보를 게을리한
지하철 당국에 항의하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전화 했슴다.

 

장애인 보호대는 어느 원칙에 의해 배치 되어 있는가하고 먼저 물어 보았지요.

 

모든 객차의 1,4,7,10 번째 차량의 첫번째 출입구 쪽에 항상
노약자 보호석 대신에 배치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는 사이 어느새 전철은 창동역에 도착해서 전 환승을 위해 내렸습니다.
제가 탔던 차량을 확인해 보니 7호차 1번 출입구 쪽이었습니다.  ㅠ.ㅠ

 

위 차량들은 노인들을 위한 자리가 부족해서

자리를 양보해 줄일이 좀 더 많이 발생하니
장거리를 가실 다리가 피곤하신 젊은 분들은

가능하면 다른 차량을 이용하세요..^^

 

종점이 가까워진 4호선은 정말 텅텅 비어서 있었습니다.
일부러 4번째 차량 1번 출입구로 가서 탔습니다.

역쉬... 노약자 보호석 대신에 한쪽에 휠체어가 설 수있게 되었더군요..

확인 끝...


뭔가 아쉬움이 남아 도착역에서 역무원을 찾았습니다.
모른척 장애인 보호석은 몇번째 차량에 있냐고 물어 보았지요

잘 모르겠다더군요..

 

옳지 당신 잘 걸렸다..


역무원도 모르는 그런 상식을(?)을 일반인이 어떻게 아느냐?
장애인들만 알면 되는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한 홍보를 해야 마땅하다.
그런 내용을 모르면 얼마나 불편한지 아느냐고
당장 시정하라고 좀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분 그저 미안해서 쩔쩔매더군요..
그렇게 미안해 하실 일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미안해 하는 그분의 그런 모습 때문에
한시간 반을 서서 온것이 억울하기만 했던 마음이 좀 풀리더군요..ㅋㅋ


하지만 중요한 상담을 앞두고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고 가니 상담결과는 당연히 안 좋았지요.

미리 상담할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과 준비를 하면서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그날 헛걸음에 맥이 풀려 돌아오면서

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일이 잘못 된 것은

지하철 공사 잘못도 아니고 노숙자 잘못도 아니고
찌질하게 엉뚱한데 신경쓰고 살아가는 제 탓이지요.

 

그날 아침 저를 제일 먼저 약올렸던 그 아저씨..


지하철 역 입구에서 공짜로 주는 신문을 소중히 챙겨 가지고
동대문역에서 내렸던 그 쪼잔한 아저씨...

 

그 아저씨 보다 더 찌질하고 쪼잔한 저는 

오늘도 지하철 1,4,7,10호 차량의 1번 출입구 쪽은 피해서 타고 있습니다...^^